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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물음들] 삶의 의미 - 고전적인 답변 II

프로틴형님 2022. 11. 27. 02:53

How to Live: David Hume

David Hume, Great Skeptic of Empiricism(경험론의 위대한 회의론자).

 

•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우리의 모든 판단(혼재하면 "할 수 있다", 획일적이면 "해야 한다"로 이어진다), custom and habit(관습과 습관)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실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결코 가질 수 없다.

 

• "추리가 아닌 관습의 영향"(심리적 성향, 자연적 본능)에 기초한 세상에 대한 지식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Instinct over reason(이성을 넘어선 본능).

 

"그러면 관습은 인간의 삶의 위대한 지침이다. 이러한 원칙만으로도 우리의 경험을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의 이해에 관한 질문]


Instinct over reason(이성을 넘어선 본능): 도덕은 sensibility(감성)이나 효용의 문제이다: 열정과 본능에 기초한 우리의 도덕적 감각.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행동을 설정하지 않는다.

 

• 흄은 따라서 sentimentalist(감성주의자라)고 불렸다.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taste"인 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도덕을 descriptive(기술적- 규칙 제시 x 실제 사용 현황을 보여줌)이라고 한다.

 

• 그래서 우리는 예술과 문학을 통해 cultivate good sensibilities(좋은 감성을 길러야) 한다

[문화가 중요해진다; cf. Protagoras: 우리는 만물의 척도입니다].

 

• Hume의 목표인 "도덕과학의 뉴턴": things/animals(사물과 동물)에 적용되는 동일한 규칙이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Nature(자연)의 일부이다.


How to Live: Immanuel Kant

Kant: 내 안에 있는 도덕률에 따라 살아라:
"내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moral law within me(내 안에 있는 도덕률)."

 

• 순수 이성은 경이로운 세계에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옳고 그름에 대한 sense(감각)을 따를 필요가 있다.

 

• 그러나 칸트의 "감각"은 흄의 감상주의적 의미가 아니다. (신에 의해) 선험적으로 주어진 moral sense(도덕적 감각). 삶에 필요한 실제적 이성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moral imperative - 도덕적 의무)

 

Kingdom of Ends(인륜의 왕국): 우리는 인륜의 왕국을 추구해야한다. 우리는 사고 팔 수 없는 dignity-존엄성(영원한 영혼, 대리인)을 가지고 있다.


• "내부의 도덕률"은 justice(정의)와 goodness(선함)을 hopes(희망한다). 비록 그것은 자연(현상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에서 찾을 수 없지만, 우리는 moral perfection(도덕적 완벽)을 희망한다. 우리는 (삶에 필요한) 희망해야 하고, 그렇게 희망한다.

 

• 희망은 오직 신이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것을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도덕적 감각은 우리에게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이유를 준다. [proof from moral law]

 

Deontological(의무론적) 도덕은 서양 문화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Puritanism : 청교도주의]
=> 여전히 매우 영향력이 있다. [Christian morality : 기독교 도덕]

 

• 칸트의 도덕 철학은 여전히 dignity of human beings(인간의 존엄성)을 보존하는 최고의 시스템 중 하나이다.


How to Live: Arthur Schopenhauer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 독일 철학자, 부유하고 괴짜. 동양철학(불교)에 영향을 받았다.

Philosopher of Pessimism(비관주의 철학자). 아마도 그들 중 가장 어두운 사람. "philosopher of death - 죽음의 철학자".

 

• 인생은 고통과 고통이다. 오직 죽음만이 해방이다.

• 세계는 오직 의지(Will)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핍, 결핍, 고통에서 비롯된다.

Will(신은?) 맹목적이고 악의적이며 악하며 우리에게 대항한다.

 

1) Will is blind desire(의지는 맹목적인 욕망이다) : "맹목적인 끊임없는 충동"은 개인을 배려하지 않고 want our destruction(우리의 파멸)을 원한다.


2) Will is malignant(의지는 악의적이다) : 생명은 본질적으로 사악하다.
Fire Sermon(불의 설교) :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욕망이 우리를 소모시키고, 삶이 고통받고 있다. "인생은 pain(고통)과 boredom(지루함)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진자처럼 움직인다." 이 두 상태는 삶의 궁극적인 구성 요소이다.

 

3) 심미적 사색을 통해 얻은 의지의 노예제도로부터 Temporary relief(일시적인 구제), Art(예술)을 통한 탈출:
예술, 음악, 문학에 몰두할 수 있다[그러나 일시적일 뿐이다]

 

4) True salvation(진정한 구원)은 renouncing our desire(우리의 욕망[불교]을 버리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성도들은 "육체의 길"을 포기하고, 빠르게, 그들의 욕망을 극복하기 위한 육체적 욕망을 거부한다. 그들은 deny the Will(의지를 부정하고) 죽음을 택한다.

 

• 그러한 견해는 pessimism(비관주의), cynicism(냉소주의), nihilism(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 Schopenhauer: 인생은 사악하다. 죽음은 우리의 구원이다.

 

• 이러한 주장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훨씬 더 나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죽음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다. 그가 확신에 차서 이런 말을 한다면, 왜 그는 삶에서 죽지 않는 것일까요? 그가 이 일을 굳게 결심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 열려 있습니다.' Letter to Menoeceus

 

• 쇼펜하우어에 대한 버트런드 러셀의 인신공격.
"쇼펜하우어가 불교적인 삶의 방식을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사소한 연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부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치게 시비가 많고 비정상적으로 탐욕스러웠다.'(서양 철학사)


How to Live: Soren Kierkegaard

Soren Kierkegaard(1813년-1855년) : 덴마크 철학자, 신학자, 시인. 공포와 떨림

Right Hegelianism(우파 헤겔주의)의 smugness(자만심)을 비판했다.

  • 19세기 덴마크는 헤겔주의를 민족주의[하나님이 선택하신]와 종교적 보수주의를 혼합시켰다.
  • 모든 사람들이 국가의 가이스트 / 시대정신[시대정신]에 속한다.
  • 기독교 문명 = 역사에서 하나님의 표현이다.

• Kierkegaard는 individual human existence(개인적인 인간의 존재)를 강조했다: 나의 자아에 대한 의식은 항상 subjective(주관적인) 경험이었다.

 

• 이것 때문에, 그는 최초의 Existentialist(실존주의자)로 여겨진다.


• 필요한 것은 개인을 위한 spiritual development(정신적인 발전)이지 국가적인 Geist(가이스트)가 아니다.

• 예: 믿음의 아버지 Abraham(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75세에 그를 지파에서 부르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십니다.(-> group에서 self로)
"Here I am (내가 여기 있다)" => 지금, 자아, 존재.

• 우리는 군중(부족)의 몰지각한 일원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불려나오고 => 우리의 독특함에 눈을 떠라.

• 아브라함의 여정은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부름으로 끝이 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믿음의 도약"이다.

• 우리도 go beyond reason(이성을 넘어서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self-realization(자아실현)의 3단계

 

1) Aesthetic sphere(미적 영역) : physical pleasures(육체적 쾌락), 예술, 아름다움. 우리는 자유롭지만 절망과 무지의 상태에 있다고 믿습니다.

 

2) Ethical sphere(윤리적 영역) : moral laws(도덕적 법칙)과 책임을 받아들인다.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고, 영웅적인 희생이 된다. human weakness(인간의 약점)을 발견하고, 죄책감, 실패, 죄를 발견한다-- 다시 말하지만, 절망은 여기서 멈춘다.

 

3) Religious sphere(종교적 영역) : 신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믿음(beyond raeason)이 필요하다. 우리는 미지의 심연을 가로지르는 "믿음의 도약 - leap of faith"이 필요합니다.

  •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이야기.

• 삶의 의미: 나의 subjective(주관적인) 조건(existence precedes essence - 존재가 본질보다 앞선다: Sartre)은 준다.
의미: 내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 내가 영혼인가요? 동물? 그게 중요한가요?

 

• 오늘날 인기 있는 Existentialism(실존주의). 우리의 '부족' 정체성은 [도시화, 소외]를 잃었습니다.
• 현대적 조건, 자아 상실: "Who am I - 나는 누구인가?" 자기 발견은 이제 대중문화의 일부이다: "Find yourself - 자신을 찾아라."
• 세속적 실존주의자들을 위해.(Sartre, Camus)의 견해는 더 darker(어둡고) nihilistic(허무주의적)이다. 신도 없고, 본질도 없고, 인간의 "자연"도 없다(no meaning). 우리는 단지 존재한다.

 

Criticism(비판) : 우리는 objective ethical judgement(객관적인 윤리적 판단)을 무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