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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물음들] 삶과 죽음 - 죽음의 피해

프로틴형님 2022. 11. 27. 01:19

Is Death Harmful? Introduction

• Leo Tolstoy의 소설 : The Death of Ivan Ilych (1886)
=> 이반은 사고를 당했고,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3일 동안 비명을 질렀다.
=> 결국 죽음과 화해하고 밝은 빛(다음 생?)을 통과한다.

 

• 톨스토이의 메시지: 우리는 모두 이반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죽음의 부정 속에서 산다.
•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다 : 우리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이반처럼 "srceam" 할 것이다.


• Socrates : in Phaedo(유명한 그림), 우리는 감옥에 있는 소크라테스가 마지막까지 행복해하는 것을 본다.
=> 그는 그 독약을 "cheerfully(명랑하게)" 먹었다. 사후세계를 믿었기 때문일까?

 

• Socrates: 철학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하기 위한 일종의 "죽음을 위한 훈련"이다.
• David Hume는 무신론자였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끝까지 cheerful(쾌활했다). 어떻게?
• 이것은 죽음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태도와 반대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할까?


Death vs. Non-death Variables

• 죽음의 과정과 죽음 그 자체 사이의 Confusion(혼란): 이 둘은 같지 않다.
• 죽음의 과정은 painful(고통스럽고), long-term(장기적이고), costly(비용이 많이 들며), shameful(수치스럽고), depressing(우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년, 노망.
• 하지만 죽는 것은 여전히 life(삶)의 일부이다.
• 그러나 죽음은 또한 빠르고 "고통이 없을" 수 있다.
예: 사람이 모르게 머리에 총상을 입음. 갑작스러운 사고, 의식 상실[진탕], 약물 과다복용(자다가 죽는 것은 행운으로 보인다).


죽음은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줄 수 있다.
=> 하지만 이것은 surviving(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나쁜 것이지 죽은 사람들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예: 우주 여행: 평생의 separation(분리) vs 죽음.


• "나" 자신에게, 이것은 내 죽음에 관한 것이다. death itself(죽음 자체)가 뭐가 그렇게 나쁜건가?


Death: The Epicurean View

"death is nothing to us(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에 익숙해져라. 모든 선과 악은 감각 속에 있지만,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다. … 그래서 가장 무서운 질병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 후자의 경우는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산 자나 죽은 자나 상관없다." [Epicurus, Letter to Menoeceus]

 

• 에피쿠로스: 죽음은 끝이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Nothingness(무(無)- death) 그 자체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될 수 없다.
Objection(반대 의견) :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지옥? [cf. Hamlet]


•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에 반대하는 Lucretius’의 Symmetry Argument(대칭 논쟁):


"지금 돌아보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지나간 영원의 지나간 세월이 어떻게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여기에는 자연이 우리의 죽음 이후에 올 시간을 보여주는 거울이 있다. "무서운 것이 보이나요?" [Lucretius, On the Nature of Things, circa 55 B.C.]

 

• Lucretius : 만약 우리가 존재하기 전의 시간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후에 그것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가?


Problem : 하지만 우리는 다르게 Do(강조) 느낀다: before out birth(우리가 태어나기 전)과 after our death(죽은 후)의 비존재에 대해 느끼는 방법에는 asymmetry(비대칭)이 있다.


Death: The Deprivation Account

• Thomas Nagel(1937~) 미국 철학자
뉴욕대 명예교수 "박쥐가 되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Nagel on Lucretius : 내가 존재하기 전의 시간은 내가 존재한 후의 시간과 different(다르다).
Argument from asymmetry of time(시간 비대칭으로부터의 주장) : 내가 전에 태어났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죽지 않는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Objection: 우리가 지금 정체성에 대해 알고 있는 바로는, Nagel이 맞는가?


Intrinsically bad(본질적으로 나쁜 것): X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다. eg. pain
Extrinsically bad(외적으로 나쁜 것): X는 comparatively(상대적으로) 나쁜 것이다.
• Eg. 집에 있으면서 TV를 보는 것,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 그것 때문에, 나는 환상적인 파티에 갈 수 없다.

 

Envelope thought experiment(봉투 사고 실험): 돈 X와 Y가 들어 있는 두 개의 봉투.
=> X를 선택.

  • X=100달러, Y=10달러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 만약 X=100달러인데 Y=1,000달러라면 나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 X만 주어진다면 100달러 정도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 죽음은 intrinsically(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extrinsically(외적으로) 나쁜 것이다. 즉, 죽음은 deprivation of life(생명의 박탈)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 죽음 자체가 중립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죽음이 deprivation of life(생명의 박탈)이기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본다.
Argument: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나는 삶이 제공하는 모든 선함을 누릴 수 없다. 나는 deprived(박탈당한다). 그러므로, 죽음은 나쁘다.
• 우리는 intuitively(직관적으로) 이것을 사실로 본다: 우리는 삶이 소중하다고 느낀다. 우리가 무덤을 볼 때 슬프다.
=>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참으로 좋으셨습니다."(창세기 1:31)

•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짧고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Objection (반대 의견) : 우리는 죽음 속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죽음이 우리의 삶을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 예: 그리스인들은 그늘진 (더 낮은) 존재의 세계인 지하세계를 믿었다.
=> 예: 조상을 위한 유교적 의식. 성인, 망자의 날, 유령.

 

• 하지만 내가 삶을 빼앗기 위해서는 내가 존재해야 한다. If i don't exist(만약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경험의 주체)), 어떻게 "나"가 박탈될 수 있을까? 그것이 사실일 time(때)가 있어야 한다. [cf. Epicurus]

• 아마도 죽음에 대한 prospect(전망)이나 thinking(생각)은 나쁜 것일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아직 살아있다.


• 죽음에 대한 Knowledge(지식)만이 우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면(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슬픔, 고통에 대한 두려움), ignorance(무지)가 답일까?


Nagel: 우리는 키츠가 24세에 죽는 것이 비극적이라는 것을 know(알고) 있지만 톨스토이가 82세에 죽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장수하는 것이 일찍 죽는 것보다 낫다. (더 적은 삶 : 박탈감은 상대적이다.)

 

Problem: 박탈당하는 것이 existence(존재)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 Mary + Paul = Larry(태어나면 놀라운 삶);
하지만 Mary는 아니라고 말한다 = Larry는 생명을 빼앗겼다.
그럼 메리==살인자? [피임 반대]

 

• 박탈은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진술을 설명한다(삶이 나빠지면 죽음은 좋은 것인가?)